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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풍경 2011.04.13 / 2011.12.14 / 2012.03.24 1.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연구소에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오후는 "체육의 날"이다. 같이 사무실에 앉아서 생활하는 박사님과 기술원 선생님들의 대화를 통해 유추해 보건데 운동이나 야외 모임을 하는 부서도 있지만 일찍 퇴근하여 쉬는 날 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월요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다들 퇴근해서 좀 쉬어야 겠다는 박사님, 산에 봄나물 캐러 가신다는 선생님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뭐하지란 생각을 잠깐 했었다. 2.그날 오후 연구 과제 회의에 앉아 박사님들의 입에서 튀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용어들로 이루어진 대화 속에서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체육의 날"에 연구 과제 책임자의 인솔하에 다른 박사님의 별장에서 바베큐 파티를 할 것이니 준비를 하라는 말 뿐이었다. 나야 별 계획이 없었다지만 점심.. 더보기
할아버지 2013.03.09 요즘 잠시나마 일을 할 요량으로 두어곳에 제출할 자기소개서를 끄적끄적 이고 있다. 어느 항목 하나 쉽게 써지는 것이 없지만 지원동기도 만만치 않은 것 중에 하나다. 지원동기를 작성하기 위해 공대에 진학하고 연구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관련 업종에 계속 종사하고 싶은 이유는 뭘까와 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나가다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와 만났다. 할아버지께서 가지셨던 많은 재능 중에 '만들기'는 탁월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게는 손자들을 위한 팽이나 나무 칼 부터 마당 한 켠에 지었던 조립식 창고에 이르기까지 할아버지의 손을 거치지 않은 물건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에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낑낑거리며 시작한게 종이접기, 연, 모형 항공기 만들기, 라디.. 더보기
평범한 하루 2013.01.20 일주일 휴가의 3일째 되는 날. 동료 선생님 댁에 같은 기관에서 근무하는 단원과 점심 식사를 하러 찾아가,Brandy 중 베스트 퀄리티인 Ritz 한 병을 세 명이서 후루룩 비우고,정신줄 놓고 자다가,집에 와서 못다한 수다를 떨다 혼자 방문을 열고 걸터 앉았다. 달마시안인 개는 오늘도 광견병에 걸린 것 마냥 마당을 배외하고,한켠에는 주인 아저씨가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신 돈으로 구입한 버스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코코넛 나무 너머로 오두막에 형광등 불빛이 밝다. 캔디안 음악에 장단을 맞추는 북소리가귀뚜라미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와 묘하게 조화롭다.멀리서 1번 국도를 달리는 버스 혹은 트럭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포야가 가까워 옴을 몸소 알려주는 달이 코코너 나뭇잎 사이로 힐끔 보인다.별 몇 개도 같이... 더보기
우문현답 2012.11.21 (작년 교직원 소풍 때)1.와라카폴라 기능대학 자동자학과 Wickramanayake (Wiki라고 부름) 선생님.57년 생으로 엄마와 비슷한 연배시다. 공학계열 학과장이기도 하다. 약간은 엉뚱하시고, 책상에 앉아서 무슨 생각에 잠기셨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계실 때도 있고,학문에 대한 열의가 있으셔서 가르치고 있는 과목에 대한 공부를 끊임없이 하시는,딸만 셋인 딸 부자집 아버지. 학생들이 실수하거나 질문에 대답 못하면 등짝을 짝하고 때릴 때마다,선생님, 학생들도 다 컸는데 그만 좀 때려요 하면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씩 웃으시는. 2.자동차학과에 내 책상이 있지만 선풍기와 멀고 햇빛이 바로 내리 쬐는 자리라 주로 위키 선생님과 마주 보고 앉아서 일을 본다.오늘도 서로 마주보고 선생님은 유체역학을 정.. 더보기
무제 2012.11.19 3일 만에 다시 돌아온 집의 방문을 열자,열린 창문과 켜 놓고 간 형광등 불빛에 수 많은 곤충들이 만든 대자연이 나의 작은 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셔츠 다림질을 마치고 급하게 나간다고 바닥에 깔아놓은 담요 위로 개미가 지나가고 있었고,형광등 주위로 거미줄이 엉켜있고 나방이 쉴 새 없이 그리고 분주하게 날개 짓을 멈추지 않았다.까먹고 버리지 못한 음식 쓰레기의 썩은 물은 비닐 봉지를 통과해 싱크대 아래 고얀 냄새를 풍기며 고여 있었다. 불과 3일.내가 지내던 - 사람이 살던 - 흔적이 쉽게 잊혀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바른 가치를 추구하면서 성실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와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왜 그리고 어쩌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이렇게 살려고 .. 더보기
EPS-TOPIK 2012.10.13 13일 - 14일 양 일에 걸쳐 스리랑카에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일하러 가는 노동자를 선발하기 위한 한국어능력시험이 9 곳의 시험장에서 치러졌다. 스리랑카에서는 10 번째로 시행되는 것으로 총 34,261명이 응시하였다. 출처: Daily News 동네에서 길을 걷다가, 트리휠을 타면,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다가, 새로운 지역에 여행을 갔다가 그렇게 만나는 현지인들이 한국 사람임을 알고 나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단연 "한국에 보내줄 수 있냐?" 혹은 "한국어를 가르쳐 줄 수 있냐?"이다. 그만큼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한국은 돈 벌어서 팔자 펼 수 있는 곳이란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그렇게 염원하는 한국에 가기위한 첫 번째 관문이자 가장 어려운 관문이기도 한 한국어능력시험에.. 더보기
잡기(雜技) 2012.09.10 (형은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데 나이 어린 저 아이는 뭐하는거니; 2012.09.10.) 스리랑카에 와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혹은 하지 않았던 일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컴퓨터 수업도 해보고, 번역/통역도 해보고,동영상도 편집 해보고,안과 수술 장면도 보고,프로젝트 제안도 해보고,기부금도 모아보고 등등 학교에 계속 있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잡기를 익혔다. 한국에서 높은 분들이 오셔서 내가 조금 조금씩 후원하던 단체로 봉사활동을 오게 되어페인트 칠을 준비하고 관리(?)하는 잡기를 하나 익혔다. (사실 도와주게 되어 좋으면서 준비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견적도 내고 가격도 보아야 하고 그리고 작업을 지시해야는 입장에서 조금은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하니 -페인트 종류는 무.. 더보기
눈웃음 2012.09.11 "태 아이예(오빠) 웃을 때, 눈 옆에 주름이 여섯 개나 생긴다!" 우리 집주인의 딸인 라쉬미가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이다.눈가에 주름이 원래 많았는데 - 어린 아이에게 정말 많아 보였나 보다.그래서 친구가 아이크림을 사다줬나?! 그나저나 스리랑카 사람들은 걸어가다가 마주치면 눈웃음을 짓고는 한다. 물론 빤히 쳐다보거나, 찝적거리는 친구들도 많지만이런 사람들보다는 눈웃음을 짓는 사람이 훨씬 많다. 오늘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유난히 웃음을 난발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서 인지 괜히 기분이 좋은 그런 날이었다. 왜 우리나라는 눈 마주치기를 꺼려하고 혹여 마주치더라도 그 눈길을 피하는데 반해이 곳은 서로 눈웃음을 교환하고 가는지 모르지만,상대방을 웃음짓게 하는 이 곳의 생활 방식 혹은 문화가 매.. 더보기
일상 2012.08.17 엊그제부터 자꾸 약속이 틀어졌다. 물건을 준비해 놓겠다는 말, 내일까지는 꼭 보내주겠다는 말, 아침 9시까지는 온다는 말, 조금만 기다리면 물건을 가져오겠다는 말 –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여전히 주문한 물건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요즘 한동안 뭔가 준비한 일들이 그래도 착착 하나하나 진행되어 잠깐 잊고 있었는데, 사실 이 곳은 스리랑카다. 스리랑카를 비하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조금 늦어지고, 계획이 변경되고 하는 것이 익숙한 곳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저 내 욕심에 내가 쏟아 부은 노력에 좋은 결말만 생각하고 상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제는 조그만 소모품 하나 사는데도 여기저기 페타(Pettah)를 왔다 갔다 고생해서.. 더보기
처음 2012.08.11 (2010년 12월 4일, Dehiwala Zoo) 말 한 마디 한 마디,소리 하나 하나,장면 하나 하나가 개별적으로 인식되던 -그렇게 감각이 깨어있고 생경하다고 느끼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 그냥 그러려니 하며 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쩔 때는 아직도 시간이 한참 남았구나 싶다가고,어쩔 때는 시간이 정말 안 남았구나 싶다가도. - 팔 월 랑카에서 벌려놓은 많은 일들 중 하나를 정말 시작해야 한다. 얼마 전 선생님들과의 회식자리에서 또 일을 하나 더 만들기는 했지만,원래 성격인 것을 어쩌리. 아무튼 병든 닭마냥 축 늘어져있지 말고 다시 처음을 되새기며 또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겠다. -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배가 너무 불러서 일단 좀 쉬어야겠다. 더보기